의치한2 반은 대개 중등2-3년 이상으로 구성돼 있다. 자연스럽게 의치한1보다 생각의 범위가 넓고 좀 더 현실적이다. 이 반 수업에서 글을 놓치지 않고 쓰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시기의 학생들은 본격적인 사춘기로 접어들기 때문에 자의식이 강해지고 정체성에 대한 욕구가 생기기 시작한다. (자기)표현에 대한 욕구 또한 늘어난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거의 그렇듯이, 강해진 자의식만큼 세상을 이해할만한 경험이나 지적깊이, 정신적 성숙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개는 관계에서의 주도권이나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공적 위치, 자기 주도성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일방적인 공격이나 냉담함, 혹은 소극적 의미의 공격성인 수동적 방어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우리의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은 대부분 여기서 비롯된다.
이 시기의 학생들을 다루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학생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특히 글쓰기의 경우, 복잡하게 정리정돈 되지 않은 생각이나 미처 정제되지 못한 원시적 본능이나 감정이 혼란스러울 때, 이런 어려움은 ‘쓰기’라는 도구를 통해 외부로 쏟아냄으로써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글쓰기라는 기제는 학생이 보다 차분해진 상태에서 행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내적으로 휘두르는 잡념과 감정의 힘으로부터 자신을 물러날 수 있게 한다. 바로 ‘객관화’하기의 힘인데, 중등 2학년 교과에 배정된 ‘공감하는 말하기’(말하기 듣기 편)는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학생들에게 ‘공감’한다는 것을 가르칠 때, 포인트는 단 하나다. 공감한다는 것은 절대 나의 생각이나 관점, 비판이나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상대의 이야기를 무조건 경청하고 결코 ‘나’가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동안, 스스로 자신의 상황과 맥락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마치 나의 이야기를 소설의 ‘서술자’가 되어 표현하는 일과 같다. 우리는 이 작업을 통해 감정의 쓰레기와 생각의 혼란 속에서 이성을 회복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정신을 회복하면, 적어도 상식적인 범주에서의 사람의 마음이란, 문제를 바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되찾고 올바른 태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돼 있다. 공감이란 이런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감하기란, 마침내 상대가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단계, 즉 문제해결 능력으로까지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이것은 중2 교과에서는 ‘적극적인 공감하기’라고 가르친다) 가만히 들어 주는 것, 마치 ‘거울’이 된 듯 상대의 상태를 그대로 비추어만 주는 것, 그럼으로써 스스로 주관적 생각과 객관적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에 닿게 만드는 것, 그것이 학생들에게 최종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과제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공감이란 ‘거울’이란 단어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가르쳐도, 상대의 말을 판단하지 말고 절대 주관적 생각을 덧입히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오래 기억하질 못한다. 그래서 선지 유형에 공감이란 말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 놓으면, 다시 말해 눈물 흘리는 상대에게 위로한답시고 ‘동조하는’ 감정적인 말을 하거나 문제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대에게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등등의 말들에 흔들리고 만다. 오답에 체크해 버리는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생각‘과 ’사실(fact)‘을 구분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의치한 수업에는 ‘Good Question!'이란 코너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쓰기, 특히 논술이나 자기소개서 등을 쓸 때 평소에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 두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본 코너는 15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200자 원고지 한 장 정도의 분량에 그야말로 좋은 질문을 만들어 주는 수업이다. 좋은 질문이란, 답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낼 수 있다. 정확히 답을 알고 있어야 그 답을 찾는 누군가에게 해답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를 넣은 좋은 질문을 만들 수 있는 이치이다. 위대한 스승만이 지금 제자에게 필요한, 혹은 깨우쳐야 할 단계의 가장 정확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시중에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질문지 형식의 좋은 책이 많다. 본인에게 알맞은 책을 골라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 전, 스마트 폰을 만지는 대신, 200정도의 답안을 작성하기 위한 ‘생각’을 적으며 잠드는 일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꾸준히(1년 이상)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써 나가다보면, 어떤 주제가 나와도 본인의 관점이 명확하게 마련돼 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글의 개요를 잡을 수 있다.
아래의 학생은 처음에 만났을 때(지금 4개월이 지났다), ‘Good Question!' 코너에서 한 줄 이상의 문장을 구사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문장력이 부족했다. 특히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데 어설퍼서 문장을 매번 지우개로 지우고 또 지우고 하기가 일쑤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생각에 대한 ’확신‘의 부족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때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문장이 자신이 없더라도, 자기 생각이 유치한 것 같아 부끄럽다 하더라도 자기를 믿고 문장을 끝까지 풀어내는 힘을 믿고 독려해 주는 일이 중요하다. 원고지란 지우개를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얼마든지 정서법에 맞게 고쳐 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일단은 어떻게든 자기 생각을 표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면서 문장을 짧게 끊어 쓰고, 주어와 서술어, 부사와 용언 등의 호응을 길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 학생은 Good Question을 통해 본인이 ‘자긍심’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사회적 자긍심, 자기극기, 헌신 등의 가치를 통해 남성으로서 자기를 실현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마침내 본인은 사관학교에 가서 직업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동기부여로 학습에도 열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번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고 쓴 글도 이 맥락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군인과 용병은 다르다. 군인은 국가를 위해 싸우지만, 용병은 ‘돈’을 위해 싸운다. 이 학생에게 군인으로서의 ‘명예’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용병이란 자신의 자긍심을 훼손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학생의 글을 잠시 소개해 본다. 여전히 구어체적인 문장 습관이 보이고 호흡을 짧게, 짧게 가져가지 못하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자기관점은 잘 정돈이 돼 있다. 앞으로 계속 지켜보고 싶은 학생이다.
의치한 수업을 하면서(공감하기, 판단하지 않는다)
의치한2 반은 대개 중등2-3년 이상으로 구성돼 있다. 자연스럽게 의치한1보다 생각의 범위가 넓고 좀 더 현실적이다. 이 반 수업에서 글을 놓치지 않고 쓰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시기의 학생들은 본격적인 사춘기로 접어들기 때문에 자의식이 강해지고 정체성에 대한 욕구가 생기기 시작한다. (자기)표현에 대한 욕구 또한 늘어난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거의 그렇듯이, 강해진 자의식만큼 세상을 이해할만한 경험이나 지적깊이, 정신적 성숙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개는 관계에서의 주도권이나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공적 위치, 자기 주도성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일방적인 공격이나 냉담함, 혹은 소극적 의미의 공격성인 수동적 방어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우리의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은 대부분 여기서 비롯된다.
이 시기의 학생들을 다루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학생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특히 글쓰기의 경우, 복잡하게 정리정돈 되지 않은 생각이나 미처 정제되지 못한 원시적 본능이나 감정이 혼란스러울 때, 이런 어려움은 ‘쓰기’라는 도구를 통해 외부로 쏟아냄으로써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글쓰기라는 기제는 학생이 보다 차분해진 상태에서 행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내적으로 휘두르는 잡념과 감정의 힘으로부터 자신을 물러날 수 있게 한다. 바로 ‘객관화’하기의 힘인데, 중등 2학년 교과에 배정된 ‘공감하는 말하기’(말하기 듣기 편)는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학생들에게 ‘공감’한다는 것을 가르칠 때, 포인트는 단 하나다. 공감한다는 것은 절대 나의 생각이나 관점, 비판이나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상대의 이야기를 무조건 경청하고 결코 ‘나’가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동안, 스스로 자신의 상황과 맥락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마치 나의 이야기를 소설의 ‘서술자’가 되어 표현하는 일과 같다. 우리는 이 작업을 통해 감정의 쓰레기와 생각의 혼란 속에서 이성을 회복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정신을 회복하면, 적어도 상식적인 범주에서의 사람의 마음이란, 문제를 바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되찾고 올바른 태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돼 있다. 공감이란 이런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감하기란, 마침내 상대가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단계, 즉 문제해결 능력으로까지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이것은 중2 교과에서는 ‘적극적인 공감하기’라고 가르친다) 가만히 들어 주는 것, 마치 ‘거울’이 된 듯 상대의 상태를 그대로 비추어만 주는 것, 그럼으로써 스스로 주관적 생각과 객관적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에 닿게 만드는 것, 그것이 학생들에게 최종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과제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공감이란 ‘거울’이란 단어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가르쳐도, 상대의 말을 판단하지 말고 절대 주관적 생각을 덧입히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오래 기억하질 못한다. 그래서 선지 유형에 공감이란 말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 놓으면, 다시 말해 눈물 흘리는 상대에게 위로한답시고 ‘동조하는’ 감정적인 말을 하거나 문제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대에게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등등의 말들에 흔들리고 만다. 오답에 체크해 버리는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생각‘과 ’사실(fact)‘을 구분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의치한 수업에는 ‘Good Question!'이란 코너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쓰기, 특히 논술이나 자기소개서 등을 쓸 때 평소에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 두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본 코너는 15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200자 원고지 한 장 정도의 분량에 그야말로 좋은 질문을 만들어 주는 수업이다. 좋은 질문이란, 답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낼 수 있다. 정확히 답을 알고 있어야 그 답을 찾는 누군가에게 해답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를 넣은 좋은 질문을 만들 수 있는 이치이다. 위대한 스승만이 지금 제자에게 필요한, 혹은 깨우쳐야 할 단계의 가장 정확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시중에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질문지 형식의 좋은 책이 많다. 본인에게 알맞은 책을 골라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 전, 스마트 폰을 만지는 대신, 200정도의 답안을 작성하기 위한 ‘생각’을 적으며 잠드는 일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꾸준히(1년 이상)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써 나가다보면, 어떤 주제가 나와도 본인의 관점이 명확하게 마련돼 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글의 개요를 잡을 수 있다.
아래의 학생은 처음에 만났을 때(지금 4개월이 지났다), ‘Good Question!' 코너에서 한 줄 이상의 문장을 구사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문장력이 부족했다. 특히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데 어설퍼서 문장을 매번 지우개로 지우고 또 지우고 하기가 일쑤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생각에 대한 ’확신‘의 부족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때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문장이 자신이 없더라도, 자기 생각이 유치한 것 같아 부끄럽다 하더라도 자기를 믿고 문장을 끝까지 풀어내는 힘을 믿고 독려해 주는 일이 중요하다. 원고지란 지우개를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얼마든지 정서법에 맞게 고쳐 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일단은 어떻게든 자기 생각을 표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면서 문장을 짧게 끊어 쓰고, 주어와 서술어, 부사와 용언 등의 호응을 길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 학생은 Good Question을 통해 본인이 ‘자긍심’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사회적 자긍심, 자기극기, 헌신 등의 가치를 통해 남성으로서 자기를 실현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마침내 본인은 사관학교에 가서 직업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동기부여로 학습에도 열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번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고 쓴 글도 이 맥락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군인과 용병은 다르다. 군인은 국가를 위해 싸우지만, 용병은 ‘돈’을 위해 싸운다. 이 학생에게 군인으로서의 ‘명예’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용병이란 자신의 자긍심을 훼손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학생의 글을 잠시 소개해 본다. 여전히 구어체적인 문장 습관이 보이고 호흡을 짧게, 짧게 가져가지 못하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자기관점은 잘 정돈이 돼 있다. 앞으로 계속 지켜보고 싶은 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