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 내신을 대비한다면 ‘감상’해야 하고, 수능에서는 ‘관찰’해야
2학기 학교 내신을 준비하는 기간, 시험 범위에는 당연히 문학이 포함돼 있기 마련이다. 특히 ‘재구성’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중등2 교과 과정에서는 학교 출판사마다 적절한 작품을 선별하여 작품의 내용이든, 인물이든, 매체든, 주제든 상관없이 본래의 문학작품을 적절하게 변형한 텍스트를 비교하며 읽힌다. ‘흥부전’이 있다면 ‘놀부전’으로 각색을 하고, ‘소나기’가 소설이라면 드라마 대본으로 매체를 달리하여 내용을 소개하기도 한다. 일단 재구성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작’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바탕이 돼 있어야 한다. 학생에 따라서는 ‘백설공주’를 재구성한 ‘흑설공주’를 ‘신데렐라(?)’ 오인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 읽었던 작품이라 줄거리와 주인공이 살짝 헛갈리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이 마지막 장면에 ‘유리구두(?)가 나오리라는 상상을 한다. 이럴 경우는 정말 답이 없다. 원작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데 어찌 원작을 재구성한 모작(?)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중학교 과정에서는 작품을 이해시키는 능력, 능동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려는 동기, 적극적으로 작품의 화자나 서술자의 입장이 되어 내용을 파악해 보려는 의도를 부추겨 주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어떻게 변형되어 나오더라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주제에서 어긋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특히 시라는 장르는 3가지 요소, 즉 시를 구성하는 주제와 심상, 그리고 운율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출제빈도가 높다. 시어의 함축적 의미나 전반적인 화자의 목소리와 감정에 중점을 두고 읽어야 한다. 또한 시만의 독특한 부분인 심상, 인간의 감각적 측면에 호소하여 시상을 자극하는 이미지적인 요소는 시의 다양한 표현방법을 묻는 문제와 함께 출제된다. 시의 운문적 요소를 결정짓는 운율을 형성하는 원리를 묻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측면인 것도 당연하다. 중등교과 과정에서 꼼꼼하게 본문을 풀이하고 억지로 암기를 시켜서라도 시어의 풀이와 표현기법, 운율형성 요소 등을 인지시키고, 여러 방법으로 뒤틀고 꼬아놓은 다양한 시도의 기출 문제를 풀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수능에서의 운문이란 이렇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런 중등 과정에서의 기본기가 바탕이 돼 있어야만 그야말로 ‘관찰’이 가능한 건 당연한 이치이지만, 고교 수능에서 문학은 감상이 아니라 ‘독해’라는 말은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가끔 학생들이 질문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면, 선지에서 이미 논리적으로, 어법적으로, 혹은 접속사의 흐름으로 보아 문맥에서 주는 뉘앙스가 정답이라는 것이 확실한데도 굳이 왜 다른 선지는 답이 될 수 없느냐고 묻는 경우를 본다. 대개는 독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깊게 시를 감상하려는 태도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우리는 수능에서 출제자가 묻고자 하는 질문에 대한 답만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 이상의 깊이와 사고력을 하는 것은 적어도 정해진 시간 내에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하는 시험이라는 상황에서는 적합한 태도가 아니다. 중등과정에서의 깊이 있는 감상적 태도를 통해 고교 과정에서는, 특히 수능이나 리트(법학전문대학원 적성능력평가시험)에서는 객관적으로, 전략적으로 작품에 접근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그래서 대입 수능 시를 다룰 때에는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하고 사유하고 능동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대신, 화자의 태도, 시의 흐름, 감각적 표현이나 운율의 형성부분, 시의 전개방식과 같은 출제자가 묻는 부분에만 굵게 답할 수 있으면 된다. 적어도 주제나 시의 내용에 관한 한, 시인 혹은 화자의 관점과 태도와 나란히 공감하려는 태도만 갖추고 있으면 수험자의 정답 적중률은 충분하다. 그래서 시도 독해이다. 시에서 해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흐름상 긍정/부정의 시어 정도만 찾아낼 수 있어도 선지 선택에 유리하다. 다음 김수영의 시 ‘구름의 파수병’의 문제를 보자.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詩(시)와는 反逆(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山頂(산정)에 서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①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우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간과 마루 한간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妻(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詩(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裸體(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詩人(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죽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反逆(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 김수영, 구름의 파수병
# 위 작품에서 ①은 긍정적일까, 부정적인 의미일까? 적어도 고교생이라면, 1연과 2연을 통해 시의 화자가 시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이라는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①번에 관한 문제가 출제된다면, 그 자체로서는 화자의 태도가 이 시구에 어떻게 반영돼 있는지 구분하기가 애매하다. 이럴 때, 산문의 독해처럼, 그 앞의 접속사 ‘그리고’가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순접을 나타내는 그리고는 1연과 2연과 그 내용의 맥을 같이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시인의 부정적인 시선이 들어가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말이 3연의 마지막 행,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 주어도 좋다’라는 표현이다. 이 시구를 연결하는 접사가 ‘또’라는 첨가의 연결사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결심하고 있는데’의 ‘그런데’라는 전환의 접사를 참고해도 좋다. 어떤 경우에라도 그 절대적인 해석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전체적인 구조에서 작픔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참고로 수능 출제 유형 문제를 실어 놓는다.
# <보기>를 고려하여 위 작품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내가 시와는 방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에서는 화자의 진솔한 성찰의 어조가 느껴지는군.
② ‘나는 이미 정해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는 ①과②의 갈등을 해소한 화자의 심정을 드러낸 것이겠군.
③ 화자가 ‘메마른 산정‘에서 지향하는 ’반역의 정신‘은 ②가 추구하는 것이겠군.
④ ‘구름의 파수병’은 두 자아의 갈등 속에서 시를 새롭게 지향하려는 화자의 의식이 반영된 이지이겠군.
⑤ 화자가 자신을 ‘어디로든 가야 할’존재로 여기는 것은 ①에서 ②로 나아가려는 의지에서 비롯한 것이겠군.
정답: ②
<구름의 파수병>에는 시와 생활 사이에서 갈등하는 화자의 진솔한 자기 성찰이 드러난다. 화자는 ①생활에 몰두하려는 자아와 이러한 자아를 극복하고자 하면서 ②시를 새롭게 지향하려는 자아를 동장시킨따. ①은 시선을 고정하려는 태도나 움츠러들어 있는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①에서 벗어나 ②로 변모하고자 하는 화자는 ‘날아간 제비’를 떠올리다가 ‘반역의 정신’을 추구하는 데 이른다. |
■ 시(詩), 내신을 대비한다면 ‘감상’해야 하고, 수능에서는 ‘관찰’해야
2학기 학교 내신을 준비하는 기간, 시험 범위에는 당연히 문학이 포함돼 있기 마련이다. 특히 ‘재구성’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중등2 교과 과정에서는 학교 출판사마다 적절한 작품을 선별하여 작품의 내용이든, 인물이든, 매체든, 주제든 상관없이 본래의 문학작품을 적절하게 변형한 텍스트를 비교하며 읽힌다. ‘흥부전’이 있다면 ‘놀부전’으로 각색을 하고, ‘소나기’가 소설이라면 드라마 대본으로 매체를 달리하여 내용을 소개하기도 한다. 일단 재구성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작’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바탕이 돼 있어야 한다. 학생에 따라서는 ‘백설공주’를 재구성한 ‘흑설공주’를 ‘신데렐라(?)’ 오인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 읽었던 작품이라 줄거리와 주인공이 살짝 헛갈리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이 마지막 장면에 ‘유리구두(?)가 나오리라는 상상을 한다. 이럴 경우는 정말 답이 없다. 원작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데 어찌 원작을 재구성한 모작(?)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중학교 과정에서는 작품을 이해시키는 능력, 능동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려는 동기, 적극적으로 작품의 화자나 서술자의 입장이 되어 내용을 파악해 보려는 의도를 부추겨 주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어떻게 변형되어 나오더라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주제에서 어긋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특히 시라는 장르는 3가지 요소, 즉 시를 구성하는 주제와 심상, 그리고 운율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출제빈도가 높다. 시어의 함축적 의미나 전반적인 화자의 목소리와 감정에 중점을 두고 읽어야 한다. 또한 시만의 독특한 부분인 심상, 인간의 감각적 측면에 호소하여 시상을 자극하는 이미지적인 요소는 시의 다양한 표현방법을 묻는 문제와 함께 출제된다. 시의 운문적 요소를 결정짓는 운율을 형성하는 원리를 묻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측면인 것도 당연하다. 중등교과 과정에서 꼼꼼하게 본문을 풀이하고 억지로 암기를 시켜서라도 시어의 풀이와 표현기법, 운율형성 요소 등을 인지시키고, 여러 방법으로 뒤틀고 꼬아놓은 다양한 시도의 기출 문제를 풀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수능에서의 운문이란 이렇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런 중등 과정에서의 기본기가 바탕이 돼 있어야만 그야말로 ‘관찰’이 가능한 건 당연한 이치이지만, 고교 수능에서 문학은 감상이 아니라 ‘독해’라는 말은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가끔 학생들이 질문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면, 선지에서 이미 논리적으로, 어법적으로, 혹은 접속사의 흐름으로 보아 문맥에서 주는 뉘앙스가 정답이라는 것이 확실한데도 굳이 왜 다른 선지는 답이 될 수 없느냐고 묻는 경우를 본다. 대개는 독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깊게 시를 감상하려는 태도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우리는 수능에서 출제자가 묻고자 하는 질문에 대한 답만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 이상의 깊이와 사고력을 하는 것은 적어도 정해진 시간 내에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하는 시험이라는 상황에서는 적합한 태도가 아니다. 중등과정에서의 깊이 있는 감상적 태도를 통해 고교 과정에서는, 특히 수능이나 리트(법학전문대학원 적성능력평가시험)에서는 객관적으로, 전략적으로 작품에 접근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그래서 대입 수능 시를 다룰 때에는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하고 사유하고 능동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대신, 화자의 태도, 시의 흐름, 감각적 표현이나 운율의 형성부분, 시의 전개방식과 같은 출제자가 묻는 부분에만 굵게 답할 수 있으면 된다. 적어도 주제나 시의 내용에 관한 한, 시인 혹은 화자의 관점과 태도와 나란히 공감하려는 태도만 갖추고 있으면 수험자의 정답 적중률은 충분하다. 그래서 시도 독해이다. 시에서 해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흐름상 긍정/부정의 시어 정도만 찾아낼 수 있어도 선지 선택에 유리하다. 다음 김수영의 시 ‘구름의 파수병’의 문제를 보자.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詩(시)와는 反逆(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山頂(산정)에 서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①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우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간과 마루 한간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妻(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詩(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裸體(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詩人(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죽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反逆(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 김수영, 구름의 파수병
# 위 작품에서 ①은 긍정적일까, 부정적인 의미일까? 적어도 고교생이라면, 1연과 2연을 통해 시의 화자가 시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이라는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①번에 관한 문제가 출제된다면, 그 자체로서는 화자의 태도가 이 시구에 어떻게 반영돼 있는지 구분하기가 애매하다. 이럴 때, 산문의 독해처럼, 그 앞의 접속사 ‘그리고’가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순접을 나타내는 그리고는 1연과 2연과 그 내용의 맥을 같이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시인의 부정적인 시선이 들어가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말이 3연의 마지막 행,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 주어도 좋다’라는 표현이다. 이 시구를 연결하는 접사가 ‘또’라는 첨가의 연결사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결심하고 있는데’의 ‘그런데’라는 전환의 접사를 참고해도 좋다. 어떤 경우에라도 그 절대적인 해석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전체적인 구조에서 작픔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참고로 수능 출제 유형 문제를 실어 놓는다.
# <보기>를 고려하여 위 작품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내가 시와는 방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에서는 화자의 진솔한 성찰의 어조가 느껴지는군.
② ‘나는 이미 정해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는 ①과②의 갈등을 해소한 화자의 심정을 드러낸 것이겠군.
③ 화자가 ‘메마른 산정‘에서 지향하는 ’반역의 정신‘은 ②가 추구하는 것이겠군.
④ ‘구름의 파수병’은 두 자아의 갈등 속에서 시를 새롭게 지향하려는 화자의 의식이 반영된 이지이겠군.
⑤ 화자가 자신을 ‘어디로든 가야 할’존재로 여기는 것은 ①에서 ②로 나아가려는 의지에서 비롯한 것이겠군.
정답: ②
<구름의 파수병>에는 시와 생활 사이에서 갈등하는 화자의 진솔한 자기 성찰이 드러난다. 화자는 ①생활에 몰두하려는 자아와 이러한 자아를 극복하고자 하면서 ②시를 새롭게 지향하려는 자아를 동장시킨따. ①은 시선을 고정하려는 태도나 움츠러들어 있는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①에서 벗어나 ②로 변모하고자 하는 화자는 ‘날아간 제비’를 떠올리다가 ‘반역의 정신’을 추구하는 데 이른다.